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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 기자]인류의 오랜 화두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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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jfoooo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05-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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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만 기자]인류의 오랜 화두이자 끊임없는 논쟁 거리다. 호모 사피엔스의 자연 상태가 전쟁인지 평화인지를 두고도 수많은 상반된 주장이 존재한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지난 3,500년 중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약 300년에 불과하다. 수치로만 본다면, 전쟁이 벌어진 시기가 평화였던 시기보다 10배 이상 길다. 결국 인간은 갈등, 분쟁, 전쟁에 취약한 존재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별도의 치열한 노력이 없는 한 평화 상태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인위적인 것이다.평화(平和)는 갈등이나 전쟁, 폭력, 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조화로운 상태이기도 하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과 사회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정의롭고 공정한 조건이 마련된 상태다. 상태이자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동시에 '회복'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은 거의 대부분 크고 작은 갈등에 노출되어 있다. 이 갈등은 조정되거나 해결되어야 하며, 극단적인 해결 방식이 전쟁이다. 평화란, 갈등이 통제되고 화해되어 또 다른 일상으로 회복되는 과정이다. 고통을 겪은 끝에 얻어지는 결과다.기후는 특정 지역에서 3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대기의 평균적인 종합 패턴을 말한다. 하루 또는 며칠 단위로 변하는 '날씨'와는 다르다. 날씨가 하루의 기분이라면, 기후는 그 지역 날씨들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습관이 성격을 만들고, 성격은 운명을 좌우한다"고 했다. 날씨의 성격이라 할 수 있는 기후는 단지 자연환경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인간의 생존, 건강,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직접적이고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류 삶의 결정적인 변화에는 언제나 기후가 있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환도 인간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기후 변화가 원인이었다. 사람의 지식과 지혜가 쌓여서 작물을 재배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재배가 가능한 온도 변화가 그 밑바탕이었던 것이다.기후는 까탈스럽고 예민한 시스템이다. 아주 작은 변동에도 연쇄 반응이 일어나 대규모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날씨보다 훨씬 예측하기도 어렵다. 국 1962년 등반 중 구릉에 올라 찍은 사진. 박철암 선생은 이를 6,700m 무명봉의 '등정' 사진으로 소개했다. 히말라야 등정 시비는 국내 산악계의 오랜 주제다. 1970년 네팔의 추렌히말(7,371m) 등정 시비를 필두로 잊을 만하면 터지곤 했다. 고산등반 열기가 가라앉은 요즘도 현재 진행형이다. 필자도 그런 문제를 지적해 왔다. 월간山 칼럼을 통해서도 몇 차례 썼다.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근거와 당위가 충분하다 해도 실명을 거론하며 쓴소리 하기는 불편하다. 실제로 여러 번 거센 비난으로 되받아야 했다. 손해 본 일도 없는데 필자는 왜 걸고넘어지려 했을까.서로 엇갈린 내용의 보고서최근의 화근은 본지 1월호 칼럼(한국 산악계의 고질적 거짓말, '정상 올랐다')에서 비롯됐다. 칼럼은 이런 내용이다. 한국 최초 히말라야 원정대였던 1962년 고故박철암 선생(1918~2016)의 경희대 다울라기리 탐사대부터 허위 등정 보고가 시작돼 숱하게 반복되었으며, 그것은 등반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기업·소속 집단이 등정자를 영웅시하면서 이득을 취해 왔던 구조 때문이고, 따라서 등반의 결과보다 과정에 주목하는 산악계 공론장이 숙성돼야 한다는 주문이었다.칼럼이 나간 뒤, 박철암 선생 관련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쪽 사람들이 필자의 칼럼으로 인해 분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두 명이 필자 집 앞까지 찾아와 밤늦은 시각 카페에 앉아 격론을 벌이기까지 했다. 필자는 칼럼에서 박 선생이 2010년대 와서야 1962년 당시 정상에 오르지 못했음을 밝혀서 '커밍아웃'했다고 썼다. 이들은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맞섰다.1962년 원정의 공식 목적은 '다울라기리 2봉(7,751m) 등반을 위한 진입로를 찾기 위한 정찰'이었다. 그런데 원정대는 인근에 있던 '6,700m의 무명봉(이름 없는 산)'도 등반했다. 이듬해 박 선생이 집필·출간한 보고서 <히말라야: 다울라기리산군의 탐사기(1963)>에 당시 등반 과정이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이렇게 얼마를 반복하였는지 갑자기 시야가 터졌다. 나는 20발자국을 더 셀 필요가 없었다. 정상에(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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