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정선(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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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4-25 08:41본문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정선(1676-1759)은 조선의 화가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광주',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겸초(兼艸)·난곡(蘭谷)이다. 정선은 어려서부터 외가와 연고가 있었던김창흡(1653-1722)의 집에서 공부를 시작했다.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졌으며, 길게 누운 모습 전체가 장엄하여 조선 시대 줄곧 명산으로 숭앙받았다고 한다. 전통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경복궁 뒤의 북악산이 서울이 주산이고, 타락산(낙산)이 좌청룡, 인왕산은 우백호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산이 주는 위용이 남다르고, 정선은 이러한 산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경중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으며 값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특히 이 작품은 <주역>의 원리가 잘 반영된 작품이다. 정선은 음양의 조화와 변화의 원리를 담고 있는 <주역>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의 화법에는 이러한 음양의 변화가 잘 반영되어 있다. <금강전도>에서도 강함과 부드러움, 수직과 수평, 점과 선, 흰색과 검은색이 대비를 이루면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년을 위한 한국 미술사> p173또한김용준은 <근원수필>의 "매화"에 "실례의 말씀이오나 '하도 오래간만에 우리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청하신 선생의 말씀에 서슴지 않고 응한 것도 실은 선생을 대한다는 기쁨보다는 댁에 매화가 성개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때문이요, 십 리나 되는 비탈길을 얼음 빙판에 코방아를 찧어가면서 그 초라한 선생의 서재를 황혼 가까이 찾아갔다는 이유도 댁의 매화를 달과 함께 보려 함이었습니다." 라고 썼다. 매화를 보고 싶은 근원의 부푼 마음이 '코방아'라는 표현에서 무릎을 탁 치게 한다.그리고 정선을 만나기 위해 호암미술관을 찾은 나는 '희원'에서 뜻밖에도 꽃이 피기 시작하는 매화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매화를 향한 낭만적인 심성이 전해지며, 나 역시 그 마음에 동화된다. "人爲를 배격하고 自得" 매월당의 매화 사랑은 "본연의 모습을 지켜 여유로움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근원의 매화 사랑은 '가난한 살림'에, '여유조차 없는 생활'에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운치"였다. 계절의 변화 때문에 우울했을까, 요즘 한창 우울했던 내게 또 이렇게 옛 사람은 자신이 감내하며 얻은 삶의 한 지혜를 전해주었다.국보 217호 <金剛全圖><인왕제색도> 1751<청소년을 위한 한국미술사> ·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 · 고연희<그림, 문학에 취하다>정선이 59세 때 그린 <금강전도>는 그의 완숙한 필치가 무르익은 대작이다. 정선은 웅장한 금강산의 모습을 마치 하늘에서 새가 보는 듯 부감법으로 그렸다. 이는 정선이 금강산 그림에서 자주 사용한 시점이다.<청소년을 위한 한국 미술사><금강전도>가 걸려 있는 호암미술관 로비노화가의 원숙기, 작가만의 내밀한 心意를 더해 이루어낸 걸작 <仁王霽色圖>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金剛全圖>내 시와 그대 그림을 서로 바꿔보는데또한 이 그림은 절친한 벗 이병원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것으로,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기와집은 바로 "북악산 기슭 육상궁 뒷담 쪽에 있던 그의 집"이라고 한다. 정선은 "인왕산의 우뚝한 기상과 이병연 집의 깨끗한 선묘로써 오랜 벗의 듬직하고도 고결한 인품"을 상징하려고 했다. (오주석의 비평)정선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 wikipedia시출간장화휘수(詩出肝腸畵揮手) 부지수이갱수난(不知雖易更雖難)김창흡은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았던 시인이자 학자로 산수유람을 무척 좋아해 여섯 번이나 금강산에 오르기도 했던 풍류객이었다. 정선은 김창흡의 집에 드나들며 학문을 배우고 그림을 보며 화가로서의 자질을 쌓게 된다. 김창흡의 문하생이 되며 정선은 평생의 지기이병연(1671-1751)을 만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시에서는 이병연, 그림에서는 정선"이라고 불리며 각자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봄꽃이 피기 시작한 호암 미술관에서는 여름이 시작되는 6월 29일까지 "한국회화사의 대표 겸재 정선"의 대규모 기획전을 개최한다.이번 전시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는 고미술계의 양대 산맥인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의 공동개최를 통해 한 공간에서 정선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165여 점의 방대한 작품을 통해 화가 정선의 예술 세계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고뇌까지 살펴볼 수 있다.1711년 36세가 된 정선은 스승김창흡을 따라 생애 처음으로금강산 여행을 했다. 이후 정선은 금강산뿐만 아니라 단양, 경남, 경기도 일대를 자주 여행하게 되면서 조선 산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화폭에 조선의 산천과 사람들을 담았다. 특히 정선은 각각의 명승지가 지닌 개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생력과 과장 등 다양한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금강산'은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시작된 장소이자 일생에 걸쳐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장소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금강산을 실제로 관찰하며 얻은 풍부한 경험과 중국 화보를 공부하며 습득한 남종문인화법이 더해지며 정선은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확립하게 되어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정선鄭敾(1676-1759)의 삶과 작품주차를 하고 희원쪽으로 들어가기 위해 보화문으로 들어섰다. 보화문은 바깥마당과 梅林을 연결시키는 문으로 덕수궁의 유현문을 본 떠 한국 전통 문양의 전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고 한다.모든 것을 거둬 모아 보존한다는 의미의 "葆"와꽃과 인간의 예술을 뜻하는 "華"를 더해 만든 이 문의 이름에서 우리나라의 자연과 선조들이 만든 예술품을 보존한다는 의미가 느껴졌다. 더불어 이 문을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풍수에서는 산을 목,화,토,금, 수의 다섯 개 유형으로 분류해 산의 기운을 표시했다. |동아일보이 그림은 '인왕산에 큰비가 온 끝에 그 비가 개어가는 모습'을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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