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김욱규의 작품에 제목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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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5-05-20 17:09본문
D.김욱규의 작품에 제목이 없
D.김욱규의 작품에 제목이 없는 이유B.김욱규 작품에서의'숲' 1.<무제>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 캔버스에 유화3. 김욱규(1911-1990)<무제>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무제>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무제> 1980년대. 캔버스에 유화송탄 미군부대에서 초상화 그리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던 김욱규는 어떻게든 생활고에서 벗어나고자 1971년 서울로 올라와 삼각지에 자리를 잡는다. 제자였던 필주광이 교통사고로 요절하자 작가는 깊은 절망에 빠졌고 가까스로 충격에서 벗어나 초상화 그리는 일을 그만두고 작업에만 전념했다. 삶은 여전히 고달팠지만 삼각지 집은 예술가로 다시 태어난 그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작가는 산 속에 위치한 삼각형 지붕의 이층집과 주변의 풍경을 마치 꿈처럼 본 환상처럼 그려냈다. 김욱규는 이 무렵 동화적인 환상의 세계 또는 추상적 판타지를 만들어낸 파울 클레에게 매료되었는데, 덕분에 실존주의적 소외에서 비롯된 내적 투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무제>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 캔버스에 유화<무제>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 캔버스에 유화김욱규의 숲은 치유와 평화의 안식처라기보다 날것의 기운과 혼돈으로 가득한 원초적 공간이다. 때로 숲은 사라지고 기이한 생명체들만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이목구비가 생략된 인간의 모습은 해골처럼 앙상하고, 날카로운 부리와 기형적으로 길고 커다란 손과 발을 지니고 있다. 새, 곤충과 하나가 된, 때로는 젠더를 상실한 인간의 모습은 잔혹동화나 SF에 등장할 법한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다. 이들은 표정이 없지만 격렬한 몸짓과 손짓을 통해 두려움과 기쁨을 표현한다. 만세를 부르거나 물구나무를 서고, 춤을 추거나 서로 손을 잡고 행진하거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거나 울부짖는다. - 전시도록, p137<무제> 1970년대 - 1980년대 초. 캔버스에 유화"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스토리다." 체코의 국민작가 보흐밀 흐라발(1914-1997)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 주인공 한탸는 2차 세계대전 소련의 체코 점령기 프라하의 지하 작업실에서 35년간 폐지를 압축, 파쇄해 꾸러미로 만드는 일을 한다. 위에서 떨어지는 폐지에는 핏물 밴 정육점 신문지, 날짜 지난 팸플릿 등뿐만 아니라 정부의 검열로 폐기된 진귀한 도서와 사상서, 문학 등이 섞여 있었고, 기계음 요란한 그곳에서 그는 홀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나치와 소련의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말살시킨 현실 세계에서 그의 유일한 소망은 책이었다. 그는 말한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채워진 고독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 전시도록, p122<무제> 1970년대 - 1980년대 초. 종이에 유화그의 작품에서 '숲'은 은유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숲 -또는 정원 -특히 낮의 숲을 소재로 한 작품은 이전 시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원초적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만개한 꽃 사이로 새와 나비가 날아다니고 어린 소녀가 춤을 춘다. 비옥한 땅 여기저기에 뿌려진 씨앗에서 싹이 돋고, 인간은 노동을 하지 않고도 그 안에서 넉넉하게 풍요로움을 누리며인간과 동식물의 구분, 위계는 사라진다. 이영철은 이 시기 김욱규의 작품이 "냉엄한 현실의 어른세계"로부터 "원초적 자연 세계, 모태 지향적 동심의 세계"로 회귀한다고 보았고, 이중섭의 '범신론적 자연관'과 일맥상통하는 김욱규의 자연 예찬을 서정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의 전통과 연결시켰다. 한국 근현대미술 가운데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군으로 소위 半추상이 불리는 회화를 들 수 있다. -전시도록, p130<무제>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무제>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김욱규 작품에서의'숲' 2.저 멀리 인간의 형상과 지평선에 걸친 붉은 태양이 보이는 상류에서부터 흘러 내려온 나뭇잎이 화면 전경을 차지하고 있다. 강인지 아니면 얕은 물줄기인지 음울한 기운을 풍기는 푸른물은 화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천천히 흐르고, 나뭇잎 위에는 자신의 몸을 실은 나뭇잎을 갉아먹고 있는 날벌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접은 날개는 닳고 찢어져 날아오르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김욱규는 존재의 부조리, 즉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자신이 소외되는 상황에 절망했고 그 불안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삶과 죽음의 공존, 낯익은 것이 낯설어지는 소외에서 오는 불안감이 강하게 느껴진다.1930년대~40년대 초 일본 초현실주의 계열의 화가들은 '나비' 이미지를 선호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는 독립미술협회 결성에 최연소로 차여한미기시 고타로인데, 1934년 "독립미술협회전"에 출품한 <구름 위를 나는 나비>는 해변에 누워 있는 여체와 조개 껍데기를 그린 <바다와 사광>과 함께 일본 초현실주의 미술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간주된다. -전시도록, p128<무제> 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초. 캔버스에 유화<무제>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무제> 1970년대. 캔버스에 유화짙은 어둠 속에 인간들이 모여 일종의 희생(제물)을 동반한 종교적 의식 또는 집단적 시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별 인간의 표정이나 특징은 생략되고 신체는 기이하게 왜곡되어,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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